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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 test
2012/01/26 – 1:14 오전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적이다
2011/02/23 – 1:31 오후
사이먼에 따르면 우리는 합리적이 되고자 노력하지만 합리적으로 되기 위한 우리의 능력에는 심각한 제약이 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여 우리의 제한된 지적 능력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사이먼은 주장한다. 우리가 올바른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흔히 맞닥뜨리게 되는 중요한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 능력의 한계이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 장하준
-Herbert Simon
공공 디자인 : ?
2010/12/14 – 5:50 오전
공공 디자인은 ‘공공 장소에서 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어떤 장소의 ‘거주민’과 함께 하는 디자인이다.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무엇을 교육할 수 있는지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기획자와 디자이너가 무언가 만들어 내는 것은 그 이후이고 중요도도 더 낮다.
공공 디자인은 ‘문화 기획’에 가까운 것이고, 디자이너가 자기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꺼내놓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패러다임이 바뀐 것은 2~3년 전이고, 그 시작은 ‘남이섬’과 ‘제주 올레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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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디자인은 Public Design 에서 Community Design으로 변화.
공공 장소를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민’과 함께 하는 것이 우선. (혹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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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 디자인의 끝에서 결국, 그 곳의 거주민이 리더, 스타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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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에서 재래시장 ‘전통화’ 사업으로.
재래시장에서 전통시장으로.
표준화, 획일화에서 반표준화, 개성화로.
아케이드, 깨끗한 화장실.. -> 문화카페, 상인의 예술가화, 상인들의 매대 디자인..
-문전성시 프로젝트 단장 – 안이영노 세미나 2010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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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달 전 들었던 서울시 디자인 담당자가 하는 말과는
꽤 다른 분위기. 그리고 더 설득력 있다는 생각.
새로운 세대의 문화?
2010/10/12 – 12:25 오전
‘은하해방전선’의 윤성호 감독 – 1976년생
‘풍요’의 세대에서 살짝 비켜간, 그래서인지 독립영화 감독.
70년대 초반 년생의 감독들이 점점 때깔의 수위를 높여가며
헐리웃 저리가라 비주얼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생각해보면 그 이후 세대는 헐리웃 때깔을 그냥 쿨하게 포기하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나름 패배감 가득한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인디 레이블 ‘루비살롱’의 흥망성쇠를 다룬 독립 다큐 ‘반드시 크게 들을 것’에서 크게 유행한 명대사..
‘요즘 내가 원피스를 보는데.. 그걸 보면서 느끼는게, 졸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
근데 우린 열심히 안하잖아. 그러니까 아마 우린 안될거야(먼산) – 타바코 쥬스 보컬 인터뷰’
..처럼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비주얼’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리고 순수한 에너지만 담았다)
이것도 나름 흐름이라면 흐름일까?
‘어차피 뭘해도 안되’식의 자학개그와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 힘든,
고민은 엄청 하고 걱정도 엄청 하는데 답이 없으니까 자포자기 심정으로, 걍 나오는대로 툭툭 던지는
느낌의 문화들.
딱 들어도 열라 구린 레코딩으로 EP를 만들어 대박을 친 ‘브로콜리 너마저’도 그렇고.
(신기하게도 그 구린 레코딩 노래를 깔끔하게 녹음하니까 좀 포스가 떨어지더라)
‘키치’나 ‘버내큘러’라기 보다는 ‘자포자기’에 가까운 문화들.
이른바 ‘디시 명언’이라는 글 모음에서도 이런 흐름을 엿볼 수 있었다.
‘디시라서 병신 짓 하는게 아니라 원래 니가 병신이다’
‘내 부모 욕을 하는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내 욕을 하는 건 참을 수 없다’
‘승리해도 병신, 패배해도 병신이라면 승리한 병신이 되라’
이런 패배주의는 나름 부동산 시장도 흔들거라고 생각된다.
20대는 집을 사기 위해 저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아마 못살꺼야’ 심정으로.
대부분은 ‘집’이 아닌 ‘방’에서 계속 살지 않을까.
새로운 수요층이 없는 아파트 가격은 상승 동력을 잃을듯. (가뜩이나 거품 가득한데)
이것은 나름 새로운 세대의 문화.. 일 수도 있겠다.
근데, ‘주류’는 안될꺼야 아마..
왜냐면 이런 자포자기 문화의 핵심은 ‘공감’이고,
따라서 같은 세대 내 문화일 수 밖에 없고
(기성 세대가 ‘자포자기’따위를 인정해 줄리도 없고,
다음 세대가 ‘자포자기’따위를 애써 물려받을리가 없으니까)
근데 우리 세대는 앞으로도 가난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
문화생활 따위에 큰 돈 쓸 수 없는 사람들이라.
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부수적일 거고.
그냥 우리끼리 보고 키득대는 수준일 것 같다.
아 이런 나의 해석마저 너무 자포자기돋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놈의 세대론 –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
2010/10/12 – 12:06 오전
이른바 ‘세대론’은 위험한 일반화일 수는 있지만 매혹적인 건 사실이다.
말하자면 내가 이렇게 ‘안나가는’ 이유가 내 탓이라기 보다는 ‘우리 세대’의 문제라는 식의 접근인데, 좋은 핑계거리가 생긴다는 점에서나 비교적 잘 들어맞는(것 처럼 보인)다는 것이 매력이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40-50년대에 태어나 60년대 중반에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미국의 미친 경제성장과 컬러TV의 등장으로 전쟁 경험을 가진, 모더니즘을 세운 기성 세대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며 키치, 버내큘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을 만들어내고, (Learning from Las Vegas가 상당한 공헌을 했다고..) 그 대표적인 예가 데이빗 린치, 팀 버튼, 조지 루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
한국에서는 이런 비슷한 현상을 60년대 초반-70년대 초반에 태어난 이들이 1990년대에 일으킨다.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공유하는 경험은 – 마찬가지로 미친 경제성장, 컬러TV의 등장, 아파트의 삶, 프로야구 등.
이들의 공통점은 역시 10퍼센트가 넘는 미친 경제성장이다.
지금은 마치 전설처럼 들리는 ‘선동열 방어율 학점으로도 취업걱정 없던 시절’이랄까.(몇몇 대기업의 기본스펙이 4.0 / 토익900이상인 지금 상황에선 레알 전설) 당시 대학생들이 얼마나 딴짓하기 좋고 놀기 좋았는가를 말해주는 것. 그리고 ‘잉여’와 ‘덕후질’이 ‘새로운 문화 탄생’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임을 전제하면, 경제적 풍요를 누린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90년대에 새로운 문화를 꽃피운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새롭게 꽃피는 대중문화와 경제적 풍요 속 잉여짓과 덕질로 탄생한 새로운 문화.
김기덕 – 1960년생
홍상수 – 1961년생
임상수 – 1962년생
박찬욱 – 1963년생
김지운 – 1964년생
봉준호 – 1969년생
나홍진 – 1974년생
오, 명단을 정리하고 보니 ‘세대’로 그럭저럭 묶이는 듯?
이들이 꽃피운 문화는 여전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난만큼 힘이 상당히 약해진 것도 사실. 그 ‘끝물’에 20대, 이른바 88만원 세대가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는 오지 않았다. (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에는 우린 너무 바쁘다. 경제 성장률은 몇 년째 바닥을 기고 있고, 주주자본주의로 전환한 사회가 높은 성장률을 가질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다. 게다가 정치에까지 무관심하니, 현재 20대는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뭐 하나 ‘힘’을 가질 가능성이 없네. 말하자면, 그것이 내가 잘 안나가는 이유다.
이렇게 생각하면
편한건 사실.
우석훈 박사가 블로그에 남긴 글귀가 생각난다.
‘지금 한국의 대학생을 굳이 둘로 나눈다면 ‘절망하는 대학생’과 ‘절망적인 대학생’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상에 절망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말 절망적이다.’
참 절망적인 이야기들이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속시원한 회의감’을 주어서 끌린다. 20대는 나약하다느니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느니 하면 우리에게 인적성검사 교재와 강의 장사를 하는 기성세대에 바라는 것 하나다 희망고문을 중단하고, 당신들이 쏙 빼놓고 말한 ‘현실’에 대해 말해줘요
라고, 투정을 부려보고싶다.
뭐 그래도.. 우린 워낙 소소하니까.
같은 고민 같은 걱정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위안을 얻으며
아직은 살만하다.

